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언급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최신작 '아이리시맨'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 '아이리시맨'은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프랭크가 평범함(?) 아니 약간의 꼼수를 쓰는 트럭 운전수에서 한 조직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 프랭크가 실제 진술한 미제사건인 지미호파 실종사건을 다룬다. 소소한 내용을 다 빼면 남는 줄거리는 이게 다다. 어떤 사람에겐 매우 지루할 수 있는 런닝타임 (무려 3시간 29분) 영화라고 미리 말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친구들'을 재밌게 봤다면 추천한다. 우리나라의 조폭 영화 또는 액션영화와 같은 기승전결이 확실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틴스콜세지 감독이 가진 힘이다. 굉장히 폭력적이고 특수한 상황을 평범하게 만드는 마법같은 능력!
1. 특별한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폭, 마피아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이라고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더더욱 특별해 보인다. 주인공은 멋있게 과장되어 있고 특별한 사건 속에서 큰 권력과 부를 누린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모든 것을 평범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피아를 평범한 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프랭크는 평범한 트럭운전수였다. 오히려 조금 치졸한(뒷 돈을 챙기려 했으니) 일반인이다. 그런 사람이 우연히(인생의 대부분은 우연이 만든다) 조직의 높은 사람과 인연이 닿게 되고 그렇게 조직의 일원이 된다. 한 가정의 가장이 트럭운전수에서 조직의 일원이 되는 과정마저 특별함이 없다. 단순히 다른건 살인을 저지르고 나쁜짓을 조금 더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모여(조직) 타인을 같이 욕하고(살인) 서로 잘 챙기며(의리)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렇다. 평범한 한 트럭운전사가 어느날 하나의 모임에 들어가서 같이 챙겨주고 욕도 하면서 약간의 이익을 보는 것. 그러나 우리는 악이라는 것을 우리와 다른 저 넘어의 것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나, 그리고 우리의 의리는 매우 선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것도 그저 평범함 의리이다. 그저 한 무리 안에서 안정을 느끼기 위한 행동은 마피아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를 보면 악행이 긴장감을 고조시켜서 일어나는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닌 사소한 말싸움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다. 우리도 무리 속에서 사소한 오해로 인해 다투곤 한다. 폭력성 혹은 악행의 크기만 다를 뿐 형태는 별반 차이가 없다.

2. 왜 우리는 집단에 속하려하는가?
무리 속에 속해 있을 때 사람은 안정을 느낀다. 같이 공감하며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은 나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타인의 공격으로 부터의 보호이다. 누군가 나를 욕할 때 같이 변호해주고 상대를 욕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속해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다. 작게는 친구나 가족이 그렇다. 이 영화의 조직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지켜준다. 그리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한다. 정도의 차이를 통해 선과 악을 구분해서 마피아나 조폭은 나쁜놈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도 나쁠 땐 나쁘다. 보편적으로 그렇다. 예를들면 한 친구가 큰 죄를 지었다. 만약 그 친구가 당신 친구라면 당신은 그를 보호할 것이다. 좋은 놈이라고.. 혹은 내 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다. 누군가 나를 보호하고 의리를 지켜줄 것, 혹은 그것을 통해 이익(권력, 돈, 안정)을 얻을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한 인간이 집단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로 돌아가서 아주 단순한 이야기다.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뭔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주인공 프랭크라면? 자기가 보좌해야하는 호퍼는 감정적이다.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과 자꾸 충돌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조폭이나 마피아의 암투가 아닌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가정과 사회생활 속에서의 개인의 입장과 행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살인의 장면 혹은 폭력의 장면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과장된 액션보다 훨씬 잔인하게 다가온다.

3.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결국 모두 시간 속에 평등하다. 그들은 늙는다. 그리고 죽는다. 남는건 없다. 그들에게 남은건 과거의 영광이다. 남들보다 화려하게 누렸다. 프랭크는 큰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이 죽을 때 까지 유지될 줄 알았지만 초라한 병실에 앉아 과거의 영광만을 말하고 있다. 가족도 모두 떠났다.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무엇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가? 악행을 저지르면서 집단의 권력을 유지하며 부를 누리는 것이 인생에 중요한 것인가? 다른 예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가? 결국 시간은 흘러 늙고 병약해진다. 그리고 죽는다.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이 평등한 시간 속에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는 것이 중요한가? 결국 인생은 자신의 시간과 다른 가치를 등가교환하는 여정이다. 이 시간은 세월이 흐를 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젊었을 때의 시간으로 교환한 것이 나중의 시간을 대체해준다. 주인공 프랭크는 젊은 시절의 시간을 권력과 돈을 위해서 본인의 시간을 사용했다. 마지막 병원에서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을 만큼 가치가 떨어졌다. 가족에게 쏟은 시간이 없었기에 가족은 없다. 그렇다고 돈과 권력으로 가족을 살 수도 없다. 외롭고 쓸쓸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야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한다. 자신의 시간을 어떤 삶의가치에 투자할 것인가. 본인의 시간이 가치 없어질 때 어떤 가치로 그것을 대체할 것인가? 아직도 나는 그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균형있는 삶이라면 좋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것을 더 우위에 둘 것인가 좀 더 고민해보기로 한다.

4. 마틴스콜세지 감독 그리고 대배우들
한가닥 하는 배우는 다 모였다. 그리고 마틴스콜세지. 무슨 말이 필요한가. 한 세대의 가장 위대했던 감독과 배우라니...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그리고 영화를 다보고 나서는 한 세대가 지나가는 것 같아 뭉클했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물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최고이고 정점일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직도 정점이라고 보여주듯 놀라웠다. 배우들의 연기는 더 농밀했고 감독은 지난 세월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은 듯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보기를 추천한다. 두 영화는 상당히 유사하다. 마틴스콜세지의 젊은 시절의 작품인 '좋은 친구들'은 주인공 헨리 힐과 '아이리시맨'의 프랭크는 우연히(?) 조직에 들어가고 권력을 누리고 몰락하는 과정이 유사하다. 그리고 그것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악행의 미화는 없다. 차이가 무엇이냐하면 몰락의 과정이다. '좋은 친구들'에서 몰락은 인간의 추악함의 끝을 치졸하게 보여줬다. 멋있는 부분이 1도 없다. 비열하고 치사하다. '아이리시맨'의 몰락은 짠하다. 인생의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세월을 겪으며 인생 속에서 깨달은 바를 영화 속에 투영한 것 같다. 과거엔 거침없고 냉소적이였고 날 것 그대로였다. 지금의 그의 영화는 농후함과 인간적인 시선을 가졌다. 영화의 변화가 우리 인생의 변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정말 말이 필요 없다. 연기에 통달한 사람들 같이 연기한다. 연기하는 것 같지 않고 그냥 그 사람같다. 심지어 약간 나온 배도 연기같다. 정점에 서 있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모여 만든 영화를 살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행복했다. '택시드라이버'에서 보여준 드 니로의 거침없던 눈빛은 깊어지고 흔들림마저 연기하는 눈빛이 되었다. '대부'에서 오열하던 알 파치노는 권력에 눈 먼 분노로 가득한 노인이 되었다. '나 홀로 집에' 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던 조 페시는 진지함과 중후함을 가진 조직의 윗선이 되었다. 그저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가치는 충분하다. 중년의 느와르의 끝판왕을 반드시 보길 바란다. 3시간 반정도는 그냥 비행기 타고 외국 간다 생각하고 보면 금방이다. 이상 '아이리시맨'의 감상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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