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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20200511

the frank 2020. 5. 1. 23:15

기억은 종종 이상한 형태로 작동한다. 인간은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의 방식에는 단순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다. 단순 기억은 다른 기억할 것들로 덮여 금새 사라진다. 추억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오래간다. 추억의 형태로 기억되는건 음악, 글, 영화 등등의 타 감각들과 함께 한다. 

운전을 하는데 갑작기 넬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70-80 알앤비, 디스코 그리고 힙합을 무지 좋아하는데 날이 덥고 어딘가 가고 있을 때 듣기 애매한 그런 순간에 갑자기 떠오른 옛노래들..넬, 델리스파이스, 이소라, 자우림, 브로콜리너마저 등등 고등학교 때 한창 듣던 노래들이 떠올라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사람기분은 언제나 신비롭다. 추억은 한순간에 한 인간을 다른 시공간으로 안내한다.
나에게는 없었던 것 같았던 사춘기가 나이를 먹고 회상해보니 고등학교시절이었다. 집안 사정이 급격히 좋아지지 않게 되자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하고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들로 밤을 가득채웠다. 그 때 나에게 구원같았던 소리가 신해철의 목소리였다. 새벽 두시만 되면 어김 없이 낮고 걸걸한 목소리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그 때 들었던 수 많은 인디밴드들의 음악, 과거 레전드 락밴드들의 음악 등등 많은 음악을 들으며 나는 성장했다. 차츰 가난도 이기지 못할 확고한 가치관이 형성됐다. 전적으로 신해철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종종 그가 그립다. 그가 그리운건 그의 음악때문이 아니다. 그의 생각이 입 밖 목소리로 나오는 것을 듣지 못해서이다. 유난히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그가 생각난다. 나와 일면식은 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도와준 은인같은 사람이라 애착이 간다.
나의 기억은 가난이었지만 추억은 걸걸하지만 따뜻한 그의 목소리였다. 나는 누가 쉬이 보고싶은 사람은 아니나 오늘따라 그가 보고싶다.

 

내가 기억하던 그의 목소리로 부른 '그대에게'

넥스트(신해철) - '그대에게' [콘서트7080, 2004] | N.EX.T - 'To you' [출처:유튜브]